간단하게 자기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춤을 추는 사람들은 안무를 지망하는 사람과 무용수를 지망하는 사람으로 나뉜다. 본인은 무용수를 지망한다. 현대무용은 너무 광범위해서 생각이 많이 다르다. 본인은 전형적인 무용수라기보다는, 힙합도 배우고 스트릿 문화를 좋아한다. 현대무용의 전통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저 춤을 추는 사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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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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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무용에 대해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현대무용은 춤에 대한 경계가 모호하고 다른 장르와 융합되려고 더 노력한다. 현대무용은 틀이 없다. 그래서 더 재밌다. 내려오는 계보와 전통이 있긴 하지만 독립적이고 독창적으로 춤을 추는 분들도 있다. 현대무용이 거칠고 테크닉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고 정적인 경우도 있다. 과격하게 들고 던지는 등 광범위하다. 재즈도 있고 힙합도 있고 무용적인 요소도 있다. 그래서인지 외국에서는 모던댄스가 아니라 콘템포러리라고 칭한다.
한 때 현대무용 콩쿨 일등을 하면 군면제가 됐었다. 지금은 아니고. 남자 무용수는 귀하다. 비보잉을 하던 분이 콩쿨에 나가서 일등을 한 적이 있다. 이와 같이 힙합과 콜라보를 많이 하는 추세다.
여담이지만, 현대무용을 하는 남자들은 그리 형편이 좋지 않다. 최두혁 교수님도 어릴 때부터 힘들게 무용을 배우셨다. 남자무용수들은 다른 직업 가진 여자를 만나기 힘들다. 주말에도 계속 연습을 하고 밤에 연습을 하는 등 생활 패턴이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은 일 하면서 만나는 경우가 많다.
처음에 무용을 어떻게 접하게 되셨어요?
중학교 때 특기적성으로 댄스스포츠를 선택했다. 관심이 있어서 들어간 건 아니고, 소위 ‘노는 아이들’이 들어가는 반이었다. 그 반에 들어가서도 춤을 열심히 추진 않았다.
무용가의 길을 걷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께서 반대하진 않으셨나요?
춤을 배운다고 했을 때 집에서 적극 환영했다. 방황하던 시기여서 뭐라도 한다고 하는 게 반갑지 않으셨을까 생각한다.
무용가의 길을 걷는데 영향받은 요소(영향받은 사람 등)가 있을까요?
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 방황하던 시기에 중학교 선생님께 연락이 왔고 만나 뵙게 됐다. 선생님께서 방황하는 내 모습에 함께 댄스스포츠 학원을 방문하길 권하셨다. 초등학생 아이가 춤추는 걸 보고 전율이 흘렀다. 열일곱 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댄스스포츠를 시작했고, 검정고시를 본 후 대학 입시로 준비했다. 마침내 대구예대 실용무용학과에 진학했다. 대학교 2학년 때 뵌 유진욱 교수님 영향으로 현대무용을 시작했다. 댄싱나인에 출연하신 분인데 대구 분이시다. 몇 년 전에 같이 공연을 했는데 너무 멋있더라. 그 선생님의 춤과 움직임을 따라하고 싶었다. 댄스스포츠는 답답했다. 똑같은 동작을 매일매일 해야 하니까. 얼마나 동작이 정확한지 호흡이 얼마나 좋은지에 대해 점수를 매기는 댄스스포츠는 너무 모호하게 느껴졌다. 현대무용의 자유로움이 좋았다. 어릴 때부터 갇혀 있는 게 싫었던 영향도 있다. 또 다른 분으로는 최두혁 교수님이 계시다. 모든 남자들의 로망, 모든 무용수들의 우상, 학교의 부조리가 없으신 분이시다.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세요?
일어나서 수업이 있으면 수업을 하고 연습실에서 연습을 한다. 공연이 있기 한 달 전부터 공연 준비를 한다. 주로 저녁부터 연습을 시작한다. 밤에 연습이 끝난다. 공연하는 인원들의 시간을 맞추다 보니 밤 열 시에 연습을 하게 된다. 낮에 일하고 밤에 연습하는 게 체력적으로 벅차다. 정신적 스트레스도 크다. 단순히 춤만 추는 게 아니라 창작을 해야 한다. 공연이 언제 있을지 몰라서 알바를 쉽게 시작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대부분 학원 수업을 하신다. 여담이지만, 무용하시는 분들이 술을 많이 마신다. 땀 흘리면서 해장한다. 그리고 쉴 때는 다 내려놓고 쉰다. 요즘은 뮤지컬 하느라 바쁘다. 공연이 계속 있다. 좋은 기회다.
식단을 조절하는 등의 몸매 관리 방법이 있을까요?
여자 무용수들의 경우 다를 수 있겠지만 남자 무용수들은 따로 식단관리를 하지 않는다. 춤을 추면서 소모하는 에너지가 너무 크기 때문에 제대로 먹지 않으면 힘들다.
가장 인상 깊었던 활동이나 작품을 꼽는다면 뭐가 있나요? 그리고 그 작품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뮤지컬 <사랑하면 춤을 춰라>가 가장 인상 깊었다. 넘버별 뮤지컬이고 무용, 재즈, 힙합 세 장르로 나뉘어 대사 없이 몸으로만 하는 공연이다. 재밌는 경험이었다. 갇혀 있던 나를 바깥으로 끄집어내준 계기가 됐다. 어릴 때부터 춤을 추며 성장하는 내용이다. 이 공연을 하면서 관객들에게 눈을 마주치는 습관을 들이게 됐고 뮤지컬과 연기에 관심이 생겼다. 본인이 추구하는 게 신체극이라서 연기를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십 년 넘게 공연된 작품으로 한국 최장 기간이다. <난타>, <점프>와 함께 시작한 작품인데 소재가 너무 춤이어서 흥행에 실패했다.
현대 무용 공연을 볼 때 다소 난해할 수 있는데 어떻게 감상하면 좋을까요?
팜플렛을 보고 작품 의도를 읽고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보면서 의미를 찾아보면 재밌다. 의미는 오브제를 보면서 찾아보면 된다.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감상이 달라질 것이다. 국립현대무용단이 있는데 한국에 최초로 생긴 현대무용단이고 수준도 매우 높다.
무용가의 길을 걷지 않았다면 어떤 일을 하고 있을지, 또 그 가는길이 힘들때 힘들 때 내가 기댈 수 있는, 날 버티게 해주는 사람 또는 요소가 있을까요?
춤 외에 다른 길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춤이 재밌어서 끝까지 무용을 놓지 않았다.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면 힘들다고 하지만 생각하기 나름인 거 같다. 가족 등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해서 무용을 그만 두는 사람들이 많다. 춤을 추지 않으려고 했지만 뮤지컬 쪽에 발이 닿게 됐다. 뜻만 있으면 어떻게든 이어지더라.
대구에 남아 계신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대학원 진학 준비를 하고 있다. 굳이 서울에 올라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대학원 붙으면 대학원 다니면서 사람 만나면서 활동하고 싶다. 지금 일이 많을 때라서 올라갈 필요를 못 느끼고 있다. 한예종에 진학할 계획이다. 한예종에 대한 로망이 있었고, 유진욱 선생님이 한예종 출신이다. 학교마다 무용 스타일이 있는데 한예종이 너무 멋있다. 한예종 공연단 공연도 계속 보고 있다.
최종 꿈(이상향)이 어떻게 되세요?
지금은 뮤지컬 공연을 많이 하고 있지만 신체극에 관심이 많다. 버스킹을 계획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씩이라도 소극장에 공연을 올리는 게 목표다. 버스킹을 통해 사람들에게 현대무용의 멋을 보여주고 싶다.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선입견을 깨고 싶다. 사람들끼리의 움직임을 보며 재밌다고 느끼길 바란다. 더 나아가, 소극장을 만들어서 주기적으로 공연을 계속 하고 싶다. 무용 공연이 단발성인 게 안타깝다. 작품 하나를 꾸준히 발전시키고 싶다. 한 번으로 끝낼 게 아니라 계속 하면 좋을 텐데. 제목은 다른데 안에 내용이 같다. 그게 안타깝다. 무용에서의 창작이 그리 참신하지 않다고 느꼈다. 최종 꿈은 교수다. 실용무용학과 교수. 학교를 좋아했다. 좋아해서 놓을 수 없었다. ‘그래도..’라는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다.
마지막으로 무용가의 길을 걸으려는 학생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무용가는 춤추는 사람이다. 예술 하는 사람이 아니라 춤추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예술이 뭔지 생각을 정립하고 있다. 생각하는 바를 표현하는 사람이 예술가다. 무용가가 되고 싶으면 춤을 많이 춰봐라. 많이 움직여보고. 무용수는 누구나 될 수 있지만 무용가는 아무나 될 수 없다. 무용수는 많다. 진짜 무용가는 없다. 현대무용이 만들어진 계기는 저항이다. 이사도라 덩컨이 발레에 대한 저항으로 토슈즈를 벗고 맨발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녀가 바로 현대무용의 시초다. 끊임없이 뭔가를 추구하고 자신만의 생각을 전달하고 신선한 거를 추구하는 사람이 무용가다.
취재: 손태린/ 사진 정용태
문화예술리뷰잡지 2017년 5/6월호 인터뷰기사로 실렸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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