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산 문화 거리의 한 화랑에는 하얗고 따뜻한 눈이 온종일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 눈 내리는 풍경만 10년이 넘도록 담아내고 있는 김종언 작가를 그의 작품과 함께 만나기 위해 그의 개인전이 한창 진행 중인 동원화랑을 방문하였다. 마침 화랑의 내부에는 잔잔한 재즈 음악이 내리 깔리고 있었다.
본인을 소개해달라
고향은 봉화인데 학교에 다니기 위해 대구에 왔고 서양학과를 전공했고 그 후로 35년 정도를 대구에서 활동했다. 그림은 중학교 때부터 꾸준히 그렸다. 그때부터 미술 공부를 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막 그렸다. 봉화는 시골이라서 학원이 없었고 학교에서 특별한 과정이 있진 않았다. 주변에서 잘한다는 칭찬을 많이 들어서 계속하게 된 것이다. 그림 그릴 여건이 안 좋았다. 미술 선생님이나 선배가 없어서 스스로 해내야 했다. 대학교 와서 거의 제대로 미술을 배울 수 있었다. 미술 대학 시절에 학생들의 우상이었다는 말이 있었는데 그저 상복이 좋았다. 그 당시엔 공모전에 대한 인식이 굉장히 좋았고 등단하는 과정이었다. 선배들, 후배들 모두 참여를 많이 했던 때였다. 시에서 하는 전시회(시전)에서 학생 때 대상 받은 건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누구를 위해 그림을 그리는가?
사람들을 위해서도 그리고 나를 위해서도 그리지만, 굳이 따지자면 내 고집대로 했으니까 나를 위해 그리는 부분이 더 컸다. 내 생각을 남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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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목포 죽교동 oil on canvas 91.0x65.2 |
예전에는 비랑 안개 그리다가 요즘에는 눈 그리시는데, 눈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 그리고 작품에 사람이 보이지 않는데 그 이유는?
눈은 동네 사람들과 나의 중간 매개체 역할을 한다. 사람도 그리긴 했었는데 사람을 직접적으로 그리면 이야기의 폭이 좁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상상할 수 있는 여운을 남기고 다른 이야기도 하고 싶었는데 사람이 들어가면 너무 직설적인 느낌이 들고 정서적으로 한쪽으로 치우쳐 보였다. 보는 이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그림에 외로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게 혹시 소외된 계층과도 관련 있는가?
의도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소외된 계층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가 있었고 좋았다. 그림을 가라앉은 분위기로 그려서 그런지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도 나는 눈 내리는 풍경 속 사람들이 내일도 웃으면서 나올 것만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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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대구 상인동 oil on canvas 162.0x112.0 2017 |
사진 찍을 때 어려운 점, 작품 관련하고 싶은 말
일단 눈이 내리면 엄청 바쁘고 한번 나가면 굉장히 힘이 든다. 눈이 그칠 때까지 쉴 수 없다. 밤새도록 찍고 며칠 동안 눈을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고 이동하고 하다 보면 추운 날씨 때문에 힘든 적도 있다. 첫째 날에는 재밌고 둘째 날부터는 힘이 든다. 힘들 때와 편할 때 생각이 다르다. 또한, 추울 때와 안 추울 때 생각이 다르다. 이것이 사진, 그림에 반영이 된다. 또한, 사진 찍을 때 사람들과 소통하는 점이 어렵다. 어색하다. 새벽에 골목을 다니다가 다른 사람들이랑 부딪히고 마음으로 소통하는 부분들이 작품에 드러나 있으니 작품을 볼 때 느껴주셨으면 좋겠다. 작품의 장소는 대부분 광주, 목포다. 눈을 따라서 가다 보니 광주, 목포로 가게 되었다. 낯선 곳은 어색하다. 갔던 곳을 가는 것이 마음이 편하고 좋다. 더불어 숙소는 자차이며 김밥과 라면을 먹으면서 사진을 찍으러 다닌다.
뜬금없지만 즐겨듣는 음악이 있는지…
음악은 잡식이지만 그중에서도 블루스 음악을 즐겨 듣는다. 처음에는 재즈 적응하는 게 어려웠다. 재즈에 빠지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근데 어느 날부터 블루스 재즈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블루스 재즈를 듣다가 다른 노래를 들으면 무언가 하나가 빠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음악은 작품에 간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그림을 그릴 때 영감을 어디서 얻는가?
현장에서 얻는다. 현장에서는 그림에 대한 생각보다는 그곳에 있는 사람들과 사물 그리고 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과거와 미래의 시간, 사람들의 움직임 같은 것들 말이다. 영감은 무조건 현장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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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화랑에서 작가 김종언 |
앞으로의 계획하고 싶은 말
나는 항상 길게 보고 간다. 죽을 때까지 이 모든 것은 과정이다. 정지된 것이 아니라 계속 흐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담은 그림은 정말 사람 자체라고 본다. 거짓말하지 않고 진솔하니까. 큰 틀에서 바뀌는 건 없지만 틀을 이루는 작은 것에 관한 생각을 하루에도 열두 번씩 바꿔가면서 그림을 그린다. 구체적인 계획으로는 내년에 문화예술회관에서 10월 전시회가 열린다.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은 내 그림을 볼 때 현장을 상상하면서 봐줬으면 좋겠다. 이 상황에서 느껴지는 기분, 지나가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대화, 그런 것들 말이다.
인터뷰 손현민 객원기자 사진 손현민 작품사진 제공 작가 김종언
---이 기사는 문화예술리뷰잡지'사각' 2019년 1-2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