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각잡지 : 기획 디스이슈] 워라밸, 즐길 준비 됐습니까?~2
  • 주 52시간으로 늘어난 여가 시간 한국인들은 준비가 됐을까? '워라밸의 명과암'
  • 공전의 히트를 친 한 광고에서 우리를 가리켜 ‘밤마다 치킨 시켜먹는 민족’이라 정의했다. 약간 느끼하지만 명쾌한 성우의 목소리에 민족의 정의가 더해지면서 보는 이들의 웃음과 공감을 자아냈다. 정말이지, 우리는 밤마다 줄기차게 치킨을 시켜먹는다. 오죽하면 치킨이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1등 한류전도사’가 됐을 정도다.

    그런데 말이다. 우리는 왜 밤이면 밤마다 치킨을 시켜먹을까. 곰곰이 치킨을 시키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저녁을 먹은 지 오래됐다 느낄만큼 밤이 늦었고, 당연히 배가 출출할 것이다. 그러면 저녁식사 후 치킨을 주문하기까지 왜 시간의 틈이 길게 벌어졌을까. 그건 일과 야근이 답일 것이다. 야근을 하려면 보통 대여섯시에는 저녁을 먹어야 하고, 야근이 끝난 아주 늦은 밤 집에 돌아와 출출한 배과 헛헛한 마음을 위로해 줄 것이 맥주와 치킨 뿐이었을테다. 이건 실제로 통계청에서 발표한 ‘한국의 사회동향 2017’ 보고서에 적나라하게 나온다. 10~30대에 이르는 젊은 층 60~70%이상이 시간적 부담 때문에 여가를 즐기지 못한다고 응답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우리가 밤마다 치킨을 시켜먹는 민족이 된 건 꽤 서글픈 일이다. 회사, 일, 사람에서 오는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나만의 시간이 너무 늦고, 그나마도 적다. 그 시간에 무엇을 하기도 어렵고, 딱히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저 먹는 것 외엔 할 일이 없었다. 
    ‘워라밸’ ‘소확행’은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자생적으로 나타났다. 일과 휴식이 적절하게 균형을 찾길 원하고 내 삶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단 하나의 것, 그것이 비록 아주 소소한 것일지라도 우리는 삶의 여유가 절실했다. 
    그렇게 20,30대 젊은 층에서 꿈틀대기 시작한 내 삶의 행복찾기는 이제 범국민의 어젠다로 확산되는 모양이다. 사회의 분위기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정부는 워라밸과 소확행을 전면에 내세우며 이에 발맞춘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재량 근무제나 주 52시간 근무제 등 다양한 근로형태를 통해 국민의 근로시간을 단축하려는 시도 중이다. 기업도 마지못해 따라하는 모양새 정도는 갖춘다. 상당수 대기업들은 이미 출퇴근 시간을 자유롭게 풀어두고, 정해진 양 만큼 근무시간을 채우는 이른바 선택형 근무제를 시행해 정착하는 단계에 있다. 또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된 이후에는 아예 야근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컴퓨터 전원이나 사무실 전기를 일괄소등하는 원시적인(?) 방법을 쓰거나 야근을 하려면 부사장의 허락을 받도록 하는 무시무시한(?) 방법도 동원하고 있다. 


    자의든, 타의든 이제 한국사회에서 워라밸을 고민하고, 소확행을 찾는 일은 이상할 것이 없다. 오히려 워라밸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소확행을 갖지 못하면 시대에 뒤떨어지는 사람이 되는 것 같은 ‘강박’마저 들 정도다. 한편으로는 이제라도 행복의 기준이 다양해진 것이 다행스럽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론 이마저도 휩쓸리듯 따라해야 하는 유행이 아닌가 우려도 된다. 
    문제는 우리의 긴 인생에서 소위 ‘놀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는데, 밤마다 치킨을 시켜먹던 그때와 별다를게 없다는 점이다. 쉽게 말하자면, 시간이 많아졌는데 할 게 별로 없다. 책도 좀 읽어보고, 색연필로 ‘컬러링’도 좀 해보고, 음악도 들어보기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노는 시간에 그다지 잘 놀지 못한다. 
    그래서 워라밸과 소확행의 시대에도 맛집과 카페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TV프로그램 이나 SNS에 등장하는 맛집에서 인증샷을 찍고, 역시나 그 곳들에 등장한 카페를 찾아 인증샷을 찍는 게 전부다. 저녁이 있고, 주말이 길어졌는데 사람들이 노는 일상은 대동소이하다. 여전히 밤마다 치킨 시켜먹던 민족에서 나아가지 못했다.

    왜 우리는 시간을 주어졌는데, 갖지를 못할까. 고민해보면 의외로 간단하다. 우리는 ‘취미’를 가져본 적이 별로 없다. 초등학교 이후, 자기소개서 혹은 입사지원서를 써 본 적이 있다면 취미와 특기를 적는 항목에서 주춤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필자 역시 취업준비생 시절, 수많은 입사 지원서를 작성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항목이 취미와 특기였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마지못해 독서와 음악감상 등을 적어내곤 했다. 취미라는 건 내가 즐기기 위함에 목적이 있다. 일은 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해야 하는’ 것이지만 취미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다. 잘하지 않아도 되고, 하는 과정 속에 행복을 느끼면 그만이다. 하지만 취미를 갖는 일 자체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내가 무엇을 해야 기분이 좋은지 잘 알지 못한다. 자아성찰 단계에 이르러 깊게 고민도 해보지만,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필자는 취미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데는 취미로 삼을 만한 경험치가 별로 없어서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국영수 외에 다른 것을 접하는 일에 인색했다. 그 중에서도 ‘문화예술’의 접근성은 현저히 낮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방학숙제 때문에 가본 것이 전부였고 공연장을 가는 것 역시 드문 일이었다. 그것은 성장해서도 다르지 않다. 이제 영화관에 가서 영화보는 일 정도가 아주 흔한 문화생활이 된 것이지, 다른 문화공간을 즐기는 이들은 아직도 소수에 불과하다. 미술관과 박물관 모두 합쳐 경기도가 세운 뮤지엄이 6개나 되는데 이들 모두 지난해 하반기와 올해 상반기 입장객 수가 150만 명을 조금 넘는 정도다. 경기도 인구가 천만을 넘었는데 말이다. 너무 비약한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필자가 취재 현장에서 가장 많이 느끼는 것은 많은 이들이 문화예술에 대해 ‘대하기 까다로운 무엇’으로 여기며 일단 거리를 둔다는 점이다. 그 문턱을 넘어 직접 겪어보지 않아서 벌어진 촌극이다.


    이는 우리 교육방식의 문제도 있지만, 정부나 자치단체의 문화예술 정책에서 비롯된 측면도 무시할수 없다. 정책에는 분명 철학이 있어야 하는데, 아쉽게도 문화예술 정책은 보수와 진보모두 철학의 부재에 시달린다. 아직까지 문화예술을 ‘복지’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며 일회성 축제나 행사에 예산을 낭비하는 곳이 많다. 이런 경향은 문화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적은 지역일수록 더 심하다. 경기도의 경우 곳곳에 막대한 세금을 들여 공연장을 세워두긴 했지만, 공연의 수준은 기대에 한참 못 미칠 때가 많다. 한 도농복합도시 공연장은 마을 잔치나 어린이집 재롱잔치로 채워지기도 하고 시설공단에서 운영을 도맡으면서 공연을 기획한다는 것은 꿈 같은 이야기로 치부되는 지경이다. 심지어 자신의 정책이나 업적을 홍보하는 선전도구 쯤으로 여기는 자치단체장들도 만연하다. 대도시의 문화정책들도 예산결정권을 가진 권력의 입맛에 따라 좌지우지 되면서 문화예술 융성과 공유를 위한 진정성은 찾아보기 힘든 곳이 많다.
    故노회찬 의원은 살아 생전 ‘국민 누구나 악기 하나쯤 다룰 줄 아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고 수차례 말했다. 백범 김구 선생도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임을 강조하며 ‘문화의 힘이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 남에게 행복을 준다’고 피력했다. 

    워라밸과 소확행을 추구하는 우리 사회의 여정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뗐다. 지금은 잘 노는 것보다 잘 쉬는 것에 방점이 찍혀 남는 시간이 기쁠테지만, 워라밸과 소확행이 익숙한 사회가 도래하면 그 심심함을 견디는 일은 고역에 가까울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잘 놀 수 있는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워라밸의 궁극적 목표은 삶의 질이다. 
                                                                  -글기고  공 지 영_ 경일일보 문화부 기자 jyg@kyeongin.com


    이 기사는 대구문화예술리뷰잡지 사각 2018년 9,10월호에 실린 기획기사입니다.    
         
  • 글쓴날 : [18-10-30 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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