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출판 한티재가 12번째 한티재시선으로 김종필 시인의 『쇳밥』을 출간했다. 20여 년간 노동자로 살면서 겪은 일과 만난 사람 이야기를 담은 노동자의 노래 60편을 담은 노동시집이다. ‘쇳밥’은 철판을 프레스로 누를 때 나오는 철판 찌꺼기로 표제시의 제목이기도 하다.
시인은 『쇳밥』에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을 등장시켰다. 가까이 있지 않았다면 그 형편을 알 수 없었을 여성이주노동자(「홍사원」)와 공장후배(「베트남 아가씨」) 등 의 이야기를 그의 언어로 옮겼다.
마사 누스바움도 그의 책 『시적 정의』(궁리, 박용준 역)에서 “문학 작품은 독자로 하여금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의 입장에 서게 하고, 또 그들의 경험과 마주하게 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김종필 시인, '쇳밥' 출간기념회 |
스물다섯의 홍사원은
나를 삼촌이라 부르며 따라다닌다.
큰돈을 벌겠다고
캄보디아 친정에 아이 둘만 떼 놓고 왔지만
한국에서도 돈 벌기는 사금을 치는 것보다 힘겹다.
섬유공장에서 야근을 하고 잠든 기숙사에서
공장장에게 겁탈 당할 뻔했고
외국인 노동자들도 마음만 놓으면
주인 없는 인형처럼 때도 없이 주물렀다.
캄보디아에 남겨진 아이들이 없었다면
죽을 각오로 덤볐거나
스스로 세상과 이별을 했을 거라고 했다.
뭇 사내의 구역질 나는 손길에서 벗어나려고
파키스탄 노동자 알리와 동거를 하면서
한 공장에 정착할 수 있었지만
지병을 앓던 아버지는 쉰을 넘기지 못했고
상을 치르고 돈 때문에 다시 돌아왔으나
파키스탄에 가서 식 올리고 살겠다던 알리는
불법체류로 강제 추방을 당했다.
눈물이 말라 미친년처럼 웃고 다니며
살고 살아가야 할 이유
예쁜 아이들의 사진만이 위로였다.
그럴수록 이를 악물고 철판을 잘랐지만
방세 몇 푼이라도 아끼려고
동족의 손가락질에도 아랑곳없이
다섯 살 어린 고향 사내와 다시 동거를 하며
한 달 더 하루만 더 불법체류자가 되었고
금수강산 한국은 허우적거릴수록 깊어지는 늪이었는데
출입국사무소 강제추방 대기 중에 전화가 왔다.
삼촌 사랑해요. 고맙습니다.
어눌한 목소리에 비로소 눈물이 묻어 있었다.
행복하게 살아, 홍사원.
-「홍사원」 전문-
시인이 시에 흥미를 느낀 것은 계성중학교 시절 국어과 교사 김진태(수필가) 선생님의 칭찬 때문이었다. 대학 진학을 접고 대구공업고등학교 들어가서는 옥저문학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시를 썼다. 이후 10년 넘게 직업군인, 제대 후 현재까지 시인의 직업은 방화문 공장 노동자다.
『쇳밥』에 대한 문단의 평판을 보면 이하석 시인은 추천사에서 “그의 시는 참 뜨겁고 진실하다.”라고 적고, 노태맹 시인은 “이만 한 노동시집은 근래에 없었던 것 같다.”라고 극찬했다.
김수상 시인은 발문에서 「홍사원」을 가장 빼어난 시라고 평하며 “김종필의 시가 가지고 있는 미덕은 노동의 눈으로 연대의 손길을 내미는 것에 있다.”라고 말했다.
현재 대구 성서공단에서 방화문을 만드는 노동자인 김종필은 첫 시집으로 『어둔 밤에도 장승은 눕지 않는다』(북인시선)를 2015년 출간했다.
한티재 | 2018.06.01.판형 규격外 | 페이지 수 128 | 정가 8,000원 7,2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