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성규 칼럼] 피사로의 언덕
  • View of l

    View of l'Hermitage, Jallais Hills, Pontoise,1867, 70 x 100, Fondation Rau pour le Tiers Monde, Switzerland

    저 멀리 보이는 언덕위로 옅은 회색구름이 나즈막하게 드리워져 있다. 가파르게 경사진 언덕 아래로 단순한 지붕색의 남루한 농가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화면의 왼편에 서 있는 회색빛 농가의 담장엔 식물들이 뒤덮여 있고 제대로 돌볼 시간없이 바쁜 그 집의 주인장을 핑계삼듯 집안의 나무들은 마음껏 자라고 있는듯 하다. 그림의 오른편 아래로는 원경의 언덕과 대칭을 이루며 나즈막한 언덕이 사선으로 가로지르며 옹기종기 모여있는 시골 마을을 포근히 감싼다. 두 언덕 사이로 화가는 잊어버리지 않고 크고 작은 나무와 풀들을 배치하며 언덕 사이에 놓여있는 시골마을에 생기를 불어 넣고 있다.

    그림속의 시간은 언제쯤일까? 한가로이 화면의 정면으로 걸어오는 남자는 지금 어디로 향하는걸까? 그와 대조되게 그의 뒤쪽에서 굽은 허리를 조금 굽혀 일을 하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 보인다. 화면속의 느긋한 두 사람의 움직임은 점심때를 지나 오후로 마을을 느리게 흘러가게 하고 있는 듯 하다.

    이 그림의 화가 피사로는 "인상파 화가의 학장"으로 불렸는데 이유는 "그의 지혜와 균형 잡히고 친절하며 따뜻한 마음을 품은 성격"때문이었다. 부드럽고 온화한 그의 품성은 그의 풍경화에도 그대로 전해져서 그의 풍경은 여느 다른 인상파 화가들과는 다른 푸근함을 간직하고 있다. 평범한 프랑스 농촌마을과 언덕을 그린 그의 풍경화는 그의 온화한 마음의 눈을 통과하며 아름다운 서정으로 변화된다. "하늘, 물, 가지, 땅에서 동시에 일하며 모든 것을 평등하게 유지하고 당신이 그것을 얻을 때까지 끊임없이 재 작업하십시오. 첫 인상을 잃지 않는 것이 가장 좋기 때문에 관대하고도 매끄럽게 칠하십시오."라고 훗날 피사로는 후배 화가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모든 곳에서 동시에 일한다는 것은 화가의 눈과 귀 그리고 신체를 통한 모든 감각이 풍경의 어느 곳에서나 고르게 작용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감각은 자주 자신이 본 인상에 주인공과 조연, 아역을 구분할 수가 있다. 감각은 때론 매우 인습적이다. 화가 피사로는 인습에 젖은 관찰자의 생생한, 신선한 눈과 감각을 회복할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위의 그림 <쟐레 언덕>은 피사로가 1년 동안 살았던 파리 근교의 소도시 퐁투아즈(Pontoise)의 작은 시골마을의 평범한 풍경이다. 그 작은 농촌 마을에 피사로는 온화함을 불어 넣음과 동시에 골격을 세우고 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을 보고 있자면 이인성 화백의 <아리랑 고개>가 떠오른다. 이인성 화백의 <아리랑 고개>에 당당하게 짜여져 있는 골격이 피사로의 <쟐레 언덕>에서도 느낄수 있다. 아마도 골격은 그의 구도와 필치에 의해서 색과 하나로 짜여져서 만들어지는 것 같다. 하지만 피사로의 온화한 눈은 뼈대를 세움에도 평온함을 잃지 않았다. 평범한 마을의 평범한 오후, 평범한 언덕은 예민한 화가의 열린 감각과 온화한 성품, 무엇보다 평범함을 쉽게 지나치지 않는 화가의 눈을 통해서 우리에게 ‘평범함의 위대함’을 전달해 준다. 

     최성규(썬데이페이퍼 대표,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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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퐁투아즈는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28.4Km 떨어진 프랑스 일드프랑스 발두아즈 주에 위치한 도시로 발두아즈 주의 주도이며 면적은 7.15㎢, 인구는 29,885명, 인구 밀도는 4,200명/㎢이다.

  • 글쓴날 : [17-03-07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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