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초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완벽한 로봇 디바 에버” 공연을 마치고 난 후 받은 질문 중에 하나는 “박사님, 로봇기술이 더 발전하면 로봇이 인간 배우를 대신할 수 있지 않을 까요?”라는 질문이었다. 로봇을 개발하는 과학자로서 로봇이 인간을 위해 널리 쓰이는 것은 바라는 일이지만, 정말 인간의 고유한 분야라고 여겨지는 예술분야에도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이 인간을 대신하게 될까?
최근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은 텔레마케터와 같이 단순반복적인 일 뿐만아니라 고소득 전문직인 회계사, 변호사, 의사의 직업까지 대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또한 최근에 인공지능으로 작성된 소설, 인공지능이 작곡한 음악, 고흐의 화풍을 따라한 만들어진 그림까지 등장하면서 인공지능의 영역은 인간의 고유한 영역이라고 생각한 창작의 영역까지 들어온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인간과 기술을 조금 더 이해한다면 위의 질문에 대한 대답에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것 같다. 기술의 측면에서 먼저 인공지능의 구현원리에 대하여 살펴보자. 인공지능을 구현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규칙을 직접 넣어 주는 방법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규칙을 찾아내는 방법이다. 최근 ‘딥러닝’이라는 인공지능 방법은 데이터에서 규칙을 찾아내는 방법의 일종이다. 결국 인공지능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지식을 규칙으로 넣어주던가 데이터를 주고 학습을 시키는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따라서 인공지능이 예술작품을 창작하기 위해서는 예술적인 감각(능력)을 규칙으로 만들어 넣어주거나, 많은 예술작품을 데이터로 제공해야 한다. 이러한 일이 가능할까? 우리는 어떤 선이나 곡선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그 선 차체가 아름다운 것이 아니고 우리가 그 것을 아름답게 느끼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음으로 느낄 수는 있지만 그런 느낌이 어디에서 오는지 잘 설명하지 못한다. 이것이 우리의 느낌을 규칙으로 만들기 어려운 이유이다. 두 번째 방법과 같이 고흐의 작품을 데이터로 제공하여 그와 유사한 창작물을 만드는 것은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창작의 범위는 고흐의 화풍을 따라하는 작품에 한정된다. 현재 인공지능이 만든 소설이나 음악은 데이터를 학습하는 방식으로 구현된 것이다. 우리가 “우리가 느끼는 모든 감정”을 규칙으로 표현 할 수 없는 한 모방은 가능하나 근본적인 창작은 어려운 것이다.
인간 배우를 대신하는 로봇의 가능성을 본다면 제한적으로는 가능하겠지만 이 또한 근본적으로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 이유는 우리는 립싱크 하는 가수는 실력이 없고 립싱크 무대에는 감동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이 노래 그 자체 보다 그 노래가 나오는 배경(스토리)까지도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로봇이 스스로 판단해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의 목소리와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효과는 반감 될 것이다.(에버의 목소리와 행동은 소프라노 마혜선씨께서 해주셨음) 물론 애니메이션 캐릭터와 같이 대리자(매개체)로서 로봇의 역할은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공연 끝나고 제일 많이 들은 질문 중 하나가 “에버가 노래를 진짜로 불렀나요? 립싱크를 했나요?” 였다.
만약에 태양의 서커스에 나오는 배우가 로봇으로 대체 되었다고 한다면, 로봇이 사람보다 재주도 잘 넘고 더 고난이도의 기술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태양의 서커스를 보고 우리가 감동을 받는 이유는 기술의 난이도 자체보다도 보통 사람의 몸으로 표현 할 수 있는 수준에서 배우가 그 한계를 뛰어 넘어섰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인공지능 로봇이 우리의 예술적인 능력을 뛰어넘을 수 없다고 해도 안심해서는 안된다. 인공지능 로봇의 시대는 다가오고 있고, 결국 기술은 창작의 도구로서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로봇을 극복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기보다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즉 협력자 또는 도구로서 이용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과 기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 도구를 잘 사용하는 예술가가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편집부
이 기사는 대구문화예술리뷰잡지 사각 2018년 5,6월호에 실린 기획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