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태어나서 대구에서 자라고 건축 공부도 대구에서 한 그도 다른 건축가와 다름없이 현대적인 건물을 짓는 평범한 건축가였다. 그러다 우연히 지인분이 본인 생가를 한옥으로 짓고 싶다고 제안하기도 하고 북성로의 문화창조놀이터 ETC의 일을 도와주기도 했다. 그러는 중 북성로 일대를 6개월 정도 훑었다. 그 때 골목에 대해 공부한 계기가 되었고 내 사무실 정도는 한옥으로 짓고 싶었다. 원래 한옥에 관심도 있었고, 그 인연으로 도심 재생 쪽으로 관심을 가져서 대구의 새 집보다는 오래된 집들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Q. 한옥을 택한 이유와 한옥에서 사는 것의 장단점
한옥을 하나의 양식이라고 보면 마당이 있으니까 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자연이랑 만날 수 있다. 강아지가 집에 3마리 있는데 문을 열면 좋아한다. 마당 즉 땅을 좋아하는 것이다. 사람도 단독형 주거 공간에서 자란 아이들이 훨씬 창의적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사계절을 다 느낄 수 있다. 봄이면 마당에 꽃도 피고 여름엔 매미도 운다. 사랑채 같은 경우는 현대식으로 지었지만 안채 같은 경우는 옛날 방식으로 지어서 인체에 무해하다. 왕겨라고 벼 알맹이 벗겨낸 껍질을 태우면 숯이 되는데 숯을 중간에 넣고 양쪽으로는 황토로 하는 방식이다. 우리 인체에 좋고 편안하다. 친환경적인 재료로 지은 집이라서 좋다.
Q. 예술 분야에서 건축의 매력은 무엇
건축은 ‘예총(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에 가입이 되어있는데 건축이 왜? 예총에? 의아해하시는 분들이 있다. 다른 나라 같은 경우는 미켈란젤로나 다빈치 이런 사람들이 건축가이자 화가이자 조각가였다. 우리는 개발, 성장 위주로 살아왔기 때문에 ‘빨리’가 되는 철근, 콘크리트 같은 것이 익숙하다. 이런 식으로 건축을 공학처럼 취급하고 예술로 안보는 측면이 많다. 왜냐면 건축은 예술이지만 자본이 없으면 할 수 없다. 미켈란젤로나 다빈치는 부유한 집안의 건축물과 교회의 자본을 받아 교회를 지으면서 이제 예술가로 남았다. 건축가들은 경제 논리를 벗어날 수가 없다. 자본 없이는 건축물을 지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건축이 좋은 점은 건축의 근간은 공학이지만 겉모습에서는 미학적인 것을 다룬다. 그리고 공간이라는 입체적인 예술품이 남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제일 큰 보람은 머리 속에만 있던 공간 즉 꿈을 이루어주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때이다. 집을 지어줬을 때 환하게 웃는 표정들이 정말 좋다. 다른 예술과는 다르게 우리는 현실화 시킨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Q. 서울의 북촌이나 전주의 한옥마을이 부럽다
북촌은 잘 되어 있어서 부러운 마음이 있지만 전주는 하나도 부럽지 않다. 전주 한옥 마을은 제대로 된 한옥 마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전주 한옥마을은 그냥 한옥 몇 채 있는 곳에 단기간에 굉장히 많은 국비를 받아 새로 지어서 밀집 시켜놓은 것뿐이다. 북촌은 좋은 점이 경주의 양동마을도 그렇듯 경사지에 집들이 지어져 있다.이것이 진짜 한옥의 묘미이다. 골목을 걸어 올라가서 내려다보면 층층이 집의 지붕 선들이 겹쳐 보이는데 그것이 참 좋다. 전주는 평지다. 손에 꼽는 한옥이 있다면 안동의 임청각이나 경주 양동마을의 향단을 좋아한다.
Q. 근대화골목에 적산가옥은 어떤 건축적 의미가 있는지? 근대화골목의 적산가옥에만 너무 집중하고 있는 것 아닌지? 적산가옥이라 하면 일제강점기와 그 이후까지도 지어졌던 건축물이다. 그 시대를 반영하는 하나의 양식을 가지고 있는 건축물이라고 보면 된다. 그때 그 시절에 지어진 건물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적산가옥의 리모델링은 첫째로 그 시대의 건축물이라는 의미가 있고 둘째로 없어질 위기에 처했던 건물을 되살렸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일제 때 적산만 지어진 것은 아니다. 남아있는 적산 건물들이 그나마 있기 때문에 근대 건축물로 보는 것이다. 우리 목수들은 한옥 집을 계속 지었다. 우리가 일제강점기 적산 건물을 다 허문다고 해서 일제강점기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적산은 적산대로 한옥은 한옥대로 그 시대를 반영하는 것이다. 근데 북성로와 그 근방에서 적산 가옥이 많아지는 이유는 그 적산가옥을 상업적 건물들로 리모델링하는 것이 추세이기 때문에 부각되고 그래서 적산건물이 많이 보이는 것이다.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면 한옥 건물도 있다. 추가적으로 근대 건축 자산의 재밌는 부분은 건물을 건물로만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공간 환경이라는 용어가 있다. 향촌동에 피난 시절에 이상화 시인과 다른 시인들이 모여서 다방에서 토론도 하고 그런 곳이 있는데 그것도 건축 자산이 될 수 있다고 한다. 포괄적인 의미를 두고 있기 때문에 나중에는 더 개발이 되면 다양한 형식들이 섞일 것이다. 오히려 북촌보다 다양성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Q. 건축 말고 관심 가지고 있는 예술 분야
시각적인 관심이 많다. 앞으로 붓글씨를 써보고 싶다. 이번에 제주도에 추사관도 갔는데 느낌이 너무 좋았다. 건축공학으로 전공을 했기 때문에 공학적 측면만 많이 배웠다. 그래서 이제 인문학적인 측면에 관심을 가지려고 하고 있다.
Q. 건축에 관심을 언제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는데 부모님께서 반대를 하셨다. 그나마 그림이랑 유사한 것이 건축이었다. 영남대 건축공학과를 나왔는데 지도교수님을 잘 만났다. 학부 때부터 대학원까지 함께 있었는데 채찍질을 많이 해주셨다. 교수님은 학부 마치고 내가 유학가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학교까지 다 알아보시고 정해 놓으셨다. 그때 집사람을 만나고 있는 상태여서 선택을 해야 했는데 나는 결혼을 선택했고 교수님이 많이 속상해하셨다. 애제자가 자신과 같은 길을 가길 바라셨다. 유학을 갔더라면 교수가 되어있었겠지만 이일은 못했겠지. 하지만 지금도 강단에 서기도 하는데 아이들과 같이 토론하고 연구하고 또 그아이들이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는게 좋다. 가톨릭 대학교에서 10년 정도 수업을 했는데 4학년때 도심재생수업과 리모델링관련 수업이 커리큘럼에 들어있는데 대명동 가면 미군부대 때문에 개발되지 못한 낡은 동네가 있다. 그곳에 상하수도가 안 들어가는 집도 있다. 대부분 어르신들이 거주하고계신다. 그런 동네에 학생들을 데려가서 답사하고 주민 인터뷰하고 그런 수업을 한다. 아이들도 나도 배운다.
Q. 건축에 관심있거나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건축이라는 것은 경험에서 나오는 것인데 글이나 책만 보고 공간을 구현해내는 것은 어려움이 있다. 학생들도 방학 때 다른 지역으로 국내여행 또는 해외여행을 가보는 것을 권한다. 그 공간감을 체험해보지 않고 그런 것을 설계할 수는 없다. 이번에 제주도로 여행을 갔다왔는데 미술관 등 여러 건축물을 보고 왔다. 제주도에 가면 안도 다다오 건축물 밖에 없다. 아시다시피 노출콘크리트로 유명하다. 그 분이 제주도 노출콘크리트 건물을 다지어겠는가 스케치 몇 장 해주고 10억을 받아가는 것이다. 근데 국내 건축가들에게는 그런 걸 안 맡긴다. 그런 부분들이 우리가 극복해야할 부분이다. 안도 다다오가 한 때는 권투 선수로 출발했고 전공자가아니다. 건축을 너무 하고 싶어 이 사람은 여행을 선택했다. 아주 유명한 건축가의 책을 머리에 넣고 여행을 다닌 것이다. 지금은 세계적인 대가가 되었다. 그래서 많은 건축물과 공간을 보고 체험하라 하고 싶다. 아는 것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지않나. 본 만큼 그런 공간을 만들 수 있다.
Q. 2018년 계획
최근에 중구에서 마당 깊은 집 문학관이라고 작업 중이다. 마당 깊은 집은 김원일 작가 소설 제목이다. 소설 속의 느낌을 주려고 준비를 하고 있다. 근데 소설 속에 집에 대한 얘기는 많이 없지만 최대한 소설 속 감성을 살릴려고 한다. 그리고 들어가는 골목이 좀 기니까 벽면을 이용해서 전시를 구상하고 있다. 설계는 내년에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최근에 신경이 많이 쓰이는 것은 ZEN FESTA라고 젊은이들의 축제가 있다. 전 세계 젊은이들이 모이는 자리인데 홍보나 전체적인 관리를 맡았다. 원래는 유럽에서 했었는데 아시아에서는 마닐라가 처음이다. 잘 되길 기도하고 있다. 인터뷰 정리 손현민 사각객원기자
한옥처럼 따뜻한 미소를 가진 건축가 노성식을 만나고 나니 그의 모습에서 건축에 대한 열정과 한옥에 대한 사랑을 느꼈다. 그 따뜻함에 대구가 옛것을 품고 나아가는 미래도시가 될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문화예술리뷰잡지 사각 2018년 1-2월호에 실린 인터뷰기사 입니다.